지난 이틀을 보낸 퐁토르손의 캠핑장을 떠나는 것이 영 아쉽다.
쾌적한 캠핑장과 시설 좋은 방갈로가 아주 마음에 드는, 모처럼 깨끗하고 편안한 숙소였는데……
오늘은 며칠 만에 날씨가 아주 화창하다.
차를 타고 다음 행선지인 보르도를 향해 출발한다.
만만치 않은 고속도로 통행료를 아끼기 위해 이제부터 프랑스 내에서는 국도를 이용할 생각이다.
시간은 다소 더 걸리겠지만 어차피 우리의 목적이 빠른 시간 내에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 아니고
여행을 하는 것이니 국도를 이용하며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가는 것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다.
맨 처음, 국도를 따라 달리며 보기 좋은 주변 경치에 즐거워 하던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프랑스라는 나라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프랑스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던 우리는 프랑스를 다소 만만(?)하게 보고 있었다.
다른 서방의 강국(미국, 독일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해지긴 했지만
아시아 작은 나라의 한국인들이 우습게 볼 만한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데도 말이다.
첫번째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잘 닦여진 프랑스의 국도,
넓은 국토 탓인지 프랑스의 국도는 아주 곧고 길게 닦여져 있었다.
산악 지대를 관통하는 우리 나라의 구불구불한 고속 도로에 익숙한 우리에게
프랑스의 국도는 우리의 고속도로 보다도 더 나아 보였다.
차가 넓은 평야 지대로 들어서고,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까지 직선으로 뻗은 도로가 이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에는
순간적으로 어이없는 웃음이 터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차량 통행량도 적어, 오가는 차들이 가끔씩 마주칠 뿐이다.
어느 정도까지 속도를 낼 수 있는지 시험 삼아 밟아본 차의 속도는 거의 시속 180 km에 육박한다.
물론, 국도인 까닭에 도로가 중간중간 시골 마을을 관통해 지나가므로 그때에는 잠시 속도를 줄여야 한다.
잘 닦인 도로에 이어 두 번째로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국도를 따라가다 자연히 통과하게 되는 시골 마을의 모습이었다.
국도가 관통하는 시골 마을에 다가가면 천천히 차의 속도를 줄여 마을을 통과해 간다.
그때 차창 밖으로 보이던 시골 마을, 예쁘고 깔끔하게 정돈된 마을의 모습은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광경이었다.
길가의 집들은 대부분 단층으로 깨끗하고 아름다웠으며
마을의 도로는 옅은 빨강색, 혹은 옅은 초록빛 아스팔트로 단정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물론, 사진 속에서나 보던 스위스의 예쁜 마을에는 못 미치겠지만
소박한 듯 하면서도 잘 정돈된 프랑스 시골 마을은 너무나 부러운 모습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프랑스 서부 지역은 비교적 부유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감안 하더라도 국도 변의 시골 마을까지 그렇게 잘 정돈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런 프랑스의 모습을 마냥 부러워하던 아메바가 갑자기 미국이 가고 싶어진단다.
여행을 계획할 때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상대적으로 시큰둥해 하며 별로 보고 싶은 곳이 없다고 했던 아메바다.
여행 비용도 제일 비싸고, 북미를 가려면 남미나 동남 아시아 중 한곳을 빼야 했기에
망설임 없이 북미를 포기했었는데, 이제는 그곳에 가보고 싶다고 한다.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의 모습이 어떠한지 보고 싶기 때문이라 한다.
미국보다도 작고, 경제적으로도 못한 프랑스의 모습이 이러한데, 미국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나도 갑자기 미국이 가보고 싶어진다. 한번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적이 없었는데……
국도와 시골 마을을 보며 프랑스에 대한 생각이 바뀐 우리는 점심때가 되어갈 무렵엔 프랑스 자동차에 대한 생각도 바꿔야만 했다.
한달 반 정도를 사용하기 위해 빌린 프랑스의 자동차 ‘푸조’, 차를 빌리면서도 차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자동차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만만하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미를 여행하며 비록 중고차 위주이긴 했지만 수많은 국산차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였다.
자동차 생산국이라는 자부심과 이제는 우리의 차도 세계 시장에서 경쟁이 되는구나 하는 안도감등,
우리나라에 있을 때보다도 국산차에 대한 호감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품질면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머지않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흔히 명차로 불리는 독일과 미국의 몇몇 자동차를 제외하곤
일본산 차나, 특히 프랑스 차와 국산차와의 품질차는 그리 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외제차를 실제 타본 적도 없으면서 국산차에 대한 막연한 신뢰를 바탕으로 가진 생각이었다.
그때부터 프랑스 차에 대해 근거 없이 만만하게(?) 본 것 같았다.
며칠 전, 차를 인수 받으며 푸조의 외형을 보며 다시 한번 그런 나의 생각을 굳혔다.
비슷한 배기량을 가진 한국의 우리차와 비교해 차의 디자인이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차를 실제로 운전해 본 처음 2, 3일간, 차의 성능이 아무래도 국산차보다 좋다는 아메바의 의견을 애써 무시하며
며칠 더 사용해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다시 며칠 뒤, 수 차례 장거리 운전을 해본 나는 프랑스차가 아직은 우리 국산차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커다란 배낭 2개와 텐트 및 캠핑 장비를 실은 차는
실제로 한국의 우리차(내수용만 그럴지는 모르지만)에 비해 성능이 더 좋았다.
특히, 경사가 심한 도로를 오를 때면 확실히 나았다.
그리고 140 Km 이상의 고속 주행 시에도 우리차에 비해 훨씬 안정적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나만의 경험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자동차의 개념 자체도 우리차보다 상당히 앞서 있었다.
고속 도로 주행 시 일정 속도를 자동으로 계속 유지해주는 속도 세팅 기능,
주변의 밝기에 따라 자동으로 작동하는 라이트 (터널을 통과할 때 유용),
빗줄기의 세기에 따라 자동으로 속도 조절이 되는 앞 유리의 와이퍼,
현재 연료로 앞으로 주행 가능한 거리를 표기해 주는 기능 등,
작은 차이지만 여러 군데에서 운전자를 편하게 해주는 기능들이었다.
디자인에서 우리차에 못 미치는 것 또한, 내부 공간을 좀 더 확보해 운전자의 승차감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에 기인한 듯 보였다.
같은 배기량의 차임에도 불구하고 내부가 확실히 넓었다.
아쉽긴 하지만 아직 프랑스의 차가 우리차보다 한 수 위임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점심은 국도변의 휴게실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대 여섯 시간을 계속 달렸다.
지도를 보니 이제 곧 보르도,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차창 밖으로는 포도밭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슬슬 캠핑장을 찾아 나서 볼까?
오늘은 일찍부터 쉬고 내일은 포도주 만드는 농장엘 가 볼 생각이다. 그 유명한 프랑스 포도주를……
한마디 더: 자동차를 직접 운전을 해보고서 프랑스 자동차가 더 좋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씁쓸한 기분을 맛보아야만 했다.
외국에 나오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나도 그런가?
그런 씁쓸함 속에서도 잘 닦인 국도를 달리며 속도를 마음껏 내 보았다.
규정 속도를 위반하는 것이었지만 시속 150, 160 Km를 언제 밟아보나 싶어 열심히 달려 보았다.
다행히 도로는 통행량도 적고 단속 카메라도 없어 둘이 번갈아 가며 속도감을 만끽하였다.
그러던 중, 우리는 한번 더 씁쓸함을 맛 보아야만 했다.
열심히 속도를 내고 있는 우리차 뒤로 저 멀리 차가 나타나 쌍 라이트를 번쩍거린다. 비키라는 것이겠지.
하지만 우리도 열심히 속도를 꽤 내고 있는 터라 엑셀레이터만 조금 더 밟고 길은 내주지 않았다.
순간, 저 멀리 보이던 뒤차는 어느 틈에 우리의 뒤로 바짝 다가와 계속해서 라이트를 켜댄다.
깜짝 놀라 길을 내주자 그 차는 우리차를 앞질러 금새 사라져 버린다.
다름아닌 독일의 자동차, BMW 였다. 잠시, 쫓아가 보려 했지만 우리차로는 역부족인 듯 하다.
그 뒤, 열심히 달리다가도 독일차인 BMW, 벤츠, 아우디 등이 나타나면 여지없이 길을 비켜 주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차로 여행하던 유럽의 전 지역에서 겪어야만 했던 일이었다.
우리에게 씁쓸함을 안겨준 프랑스 차도 독일차에 의해 쓴맛을 보는 순간이었다.
차를 운전하고 있던 우리는 덩달아 한번 더 쓴 맛을 본다.
나는 한국의 우리차에 꽤 만족하고 있다. 성능도 그만하면 괜찮고 가격도 적당(?)하고……
한국의 자동차 회사 엔지니어들이 열심히 하고 있으니 차의 성능도 계속 좋아 지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