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w long? :::

출발  : 2003년 4월24일 
도착  : 2003년 11월 27일 (총 2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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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대한민국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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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8일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요.
사장을 하고 싶다던 우리 반쪽, 드디어 회사를 하나 차렸네요.^^
덕분에 저도 다시 일을 시작했구요. 여행에서 돌아온지 벌써 4년 2개월.
그때 쌓은 마일리지로 올봄엔 베트남을 다녀올까 한답니다....  
                                                                      - 이쁜 아메바 mingkii


 

우리는... 떠나기 전 여행기사진 게시판(board) 못다한 이야기 여행 tip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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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생미셸(Mont Saint Michel), 수도원과 대천사 미카엘…(프랑스 서부 2), 6월 26일

작성자

kiru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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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림

우리가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은 ‘퐁토르손’ (Pontorson)이라는 마을,
최종 목적지인 몽생미셸에서 약 9 Km 떨어진 곳이다. 
기차역이 있는 작은 마을로, 열차를 타고 오는 경우에는 이곳에 내려 차를 한번 더 타야만 몽생미셸에 다다를 수가 있다.

어제는 예상치 않았던 중세의 도시, ‘푸제르’에서 너무 오래 머무르는 바람에 저녁 7시가 다 되어 이곳에 도착하였다.
비속을 헤매이며 가까스로 캠핑장에 숙소를 정하고, 이번에는 텐트대신 방갈로를 하나 빌렸다.
쏟아지는 비를 감당하기엔 우리의 텐트가 너무 빈약하였기 때문이다.

비가 오는데도 캠핑장에 머무는 것을 못마땅해 하며 잔뜩 부어있던 우리의 아메바,
막상 방갈로를 직접 본 후에는 얼굴이 단숨에 밝아졌다.
조립식 건물로 지어진 작은 방갈로는 청결하고, 시설도 아주 좋아 어제와는 달리 아메바의 마음에 꼭 든 것 같았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본, 몽생미셸의 아름다운 야경도 우리 둘을 감탄 시키기에 충분했다.
쾌적한 방갈로와 아름다운 몽생미셸, 덕분에 흐믓한 기분이 되어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잠을 잘 자서인지 전날의 피로는 말끔하게 풀리고, 아침엔 몸도 마음도 아주 상쾌했다.
천천히 아침식사를 마치고 몽생미셸을 향해 출발.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 프랑스 서부에 위치한 곳으로
노르망디 지역과 브리타뉴 지역 사이에 해류가 드나드는 해안가에 위치한 작은 섬을 일컫는 것이다.
바위섬 위에 수도원이 세워져 있고, 그 주변으로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육지와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밀물 때가 되면 섬 주변의 갯벌은 모두 바다 물에 잠겨 버리고 작은 섬이 되어버리는 곳이다.
썰물 때 보면, 주변의 뻘이 워낙 멀리까지 넓게 펼쳐져 있어 섬이라는 말이 실감 나지 않는다.
하지만 밀물 때가 되면 그 넓은 뻘은 모두 바닷물에 잠겨 버리고
남아있는 것은 몽생미셸과 육지를 있는 제방 위의 길게 뻗은 도로 뿐 이다.

몽생미셸 (Mont Saint Michel)의 기원은 서기 7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지역의 주교가 대천사 미카엘(Archangel Michel)의 계시를 받아 바위섬의 정상에 수도원을 건설하였다.
그 후, 이곳은 순례자들의 주요 성지가 되었고, 10세기 경에는 ‘베네딕틴회’의 수도사들이 정착하였으며
섬 안의 마을은 조금씩 커져 수도원 성벽 바로 아래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14세기경에는 수도원이 더욱 확장되어 중앙에 위치하던 건물은 섬의 끝부분까지 확장되었다.

바위섬에 세워졌던 수도원은 군사적 가치도 높아,
백년 전쟁 당시에는 난공불락의 성벽과 요새 덕택에 영국측의 수많은 공격을 견뎌내며 프랑스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그 후, 프랑스 혁명동안 수도원의 종교적인 공동체가 해체됨에 따라 근세에 이르기까지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숙소를 출발 후 10분쯤, 마침내 저 멀리 몽생미셸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제 저녁에는 어두워 잘 보이지 않던,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제방 위의 기다란 도로도 한 눈에 보인다. 
길게 뻗은 제방 위의 도로, 그리고 그 끝에는 정상에 세워진 수도원과 더불어 중세의 건물로 뒤덮인 몽생미셸이 있다.
그 오묘한 모습은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하고, 수많은 신자들의 순례지가 되었던 이유를 짐작케 한다. 

아직 밀물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섬 주변엔 바닷물 대신 넓은 뻘이 펼쳐져 있고
그것이 신기한 듯 몇몇 관광객은 뻘 위를 돌아 다닌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섬 안으로 들어갔다. 

정상의 수도원으로 이어지는 마을의 좁은 길은 어젯밤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어제는 어두워 건물들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고,
단지 내부를 촛불로 환하게 밝힌, 분위기 좋은 식당의 모습이 전부인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낮에 보는 마을의 모습, 특히 정상으로 이어지는 경사진 골목길과 주변의 건물들은
중세의 모습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관광객들과 잘 어울리진 않았지만……

비탈진 길을 따라 수도원의 입구에 도착, 드디어 수도원 내부로 들어섰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모처럼 용감하게 (?? 무모하게!!) 수도원에서 제공하는 ‘오디오 가이드’도 빌렸다. 

이어폰과 수도원의 설명이 담긴 녹음기로 구성된 오디오 가이드, 물론 설명은 영어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사실, 어설픈 영어 실력의 우리에겐 설명의 속도가 너무 빨라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지만
수도원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어 할 수 없이 이용했던 것이었다.
유서 깊은 수도원을 아무런 내용도 모른 채 겉 모습만 보고 돌아가기가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카세트를 목에 걸고 이어폰을 낀 아메바를 앞세우고 수도원 계단을 천천히 오른다.
비용 절감을 위해 하나만 빌려 번갈아 듣는 것이다. 
진행 속도가 늦긴 하지만 한쪽이 설명을 듣는 동안에는 주변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어
여유 있게 둘러보는 것이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물론, 토익 공부하듯 인상을 써가며 조금이라도 더 알아 들으려는 서로의 모습이 안타깝기는 했지만 말이다.
다행히 여행을 통해 일취월장(?)한 우리의 리스닝 실력 덕에 반쯤 알아듣고 반쯤 추측하고……
여행 중에 토익 공부하는 기분,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계단을 따라 서쪽 테라스에 이르자 섬의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까지 펼쳐진 뻘에 차츰 밀물이 밀려오고 있었다. 
바다 쪽으로 지어진 성벽의 바깥은 커다란 바위와 절벽으로 이어진다.
바위섬의 정상에 지어진 수도원이라는 것을 실감케 해주는 모습이었다.

모두 3층으로 이루어진 수도원은 ‘기도’와 ‘노동’을 통해 수도에 전념했을
베네딕틴회 수도사들의 생활을 보여주듯 검소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작은 정원을 가운데 두고 만들어진 회랑이나, 예배당의 장식들은 아름답긴 하나 사치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게 느껴졌다.
바깥의 다른 화려한 성당들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8세기경에 세워지고 수세기 동안 증축과 10여 차례가 넘는 화재로 인한 손상, 그리고 재 건축,
건물의 역사를 말해주듯 수도원의 건물들은 수 세기의 건축 양식이 섞여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수도원을 돌아 보기에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학 학습기(?)를 들고 번갈아 설명을 듣느라 어느새 두어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수도원을 나오기 전, 서쪽의 테라스에서 다시 한번 바깥 경치를 둘러 보았다.
이제 물이 상당히 들어와 누런 뻘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바닷물에 둘러싸인 몽생미셸은 완전한 섬이 되어버렸다.
수세기전 수도에 전념하던 수도사들도 이런 자연의 신기한 섭리 앞에서 더욱 경건한 마음이 되지 않았을까?

수도원을 나오는 출구의 바로 앞, 한 전시실에는 수도원을 짓도록 계시를 내렸다는 ‘대천사 미카엘’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몽생미셸의 상징인 ‘대천사 미카엘’의 동상은 수도원 종탑 위에 자리하고 있었고,
우리가 바로 앞에서 본 것은 똑 같은 형상을 한 모조품이었다.

천사의 상징인 커다란 날개를 등에 단 ‘대천사 미카엘’은 오른손에는 칼을, 왼손에는 한 쌍의 저울을 들고 있었다.
최후 심판의 날, 죽은 자들을 이끌고 그들의 영혼을 저울에 다는 일을 하는 미카엘은
중세에 여러 지역에 걸쳐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한다.
그리고 손에 쥔 칼과 저울로 인해 ‘기사’(Knight)와 
무기 및 저울과 관련된 ‘상인 조합’의 수호신으로 여겨 지기도 했다고 한다.

가까이서 본 동상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천사들 중 우두머리이며, 전설 속에서는 용을 물리치기도 했다는 이야기들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저 날씬하고 미끈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공상 만화 영화의 주인공처럼, 멋지기만 한 그런 모습이 우리에겐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대천사 미카엘을 뒤로하고 수도원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다시, 마을의 좁은 길을 따라 서둘러 몽생미셸을 빠져 나왔다.
아직 저녁 시간이 되려면 한참이 남았지만 숙소에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가기 위해서 였다.
이유는 단 한가지, 시설 좋은 방갈로에서 조금이라도 더 머물기 위해서… 

어젯밤, 캠핑장의 방갈로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이곳, ‘퐁토르손’에서 하루를 더 머물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니 가능한 오랜 시간을 숙소에서 뒹굴 거리는 것이 이곳에서 우리가 할 일이다.

수도원을 둘러 보며 즐거워하던 좀 전의 똘똘한 한국 여행객은 온데 간데 없고,
지금 내 옆엔 숙소에서 빈둥거리며 놀 생각에 여념이 없는 ‘아메바’만이 있다.
벌써부터 저녁에 무얼 먹을지 고민에 빠져있는 아메바, 그래도 튼튼하고 잘 먹는 우리 아메바가 너무나 자랑스럽다. 


몇 마디 더:

1) 몽생미셸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멀리서 본 섬 전체의 모습이었다.
특히 어제 저녁, 어둠 속에서 불빛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던 몽생미셸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아무런 말도 필요 없이 그저 바라보기는 것만으로도 좋아, 하루 종일 차를 몰고 온 피로가 한 순간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자동차를 타고 이곳에 온 것이 잘 한일인 것 같다.
차를 타고 오지 않았다면 이곳에 하룻밤을 묵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아름다운 몽생미셸의 야경은 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퐁토르손에서 머물렀던 캠핑장은 별 세 개짜리,
수영장과 식당까지 갖추고 있었고 전체적으로도 상당히 쾌적한 곳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묵었던 방갈로의 시설은 어디 하나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조립식 건물로 지어진 방갈로 안에는 깨끗한 침대를 갖춘 작은 방이 두개,
소파까지 딸린 거실과 깨끗한 화장실, 거기다 조리 기구도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냉장고도 준비되어 있었다. 

방갈로가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루를 더 묵기로 한 우리가 약간 우습긴 하다.
그래도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즐겁게 지내는 것이니까. 

- 나중에서야 확인 된 것이지만, 그 방갈로는 우리가 거쳤던 캠핑장 시설 중 가장 훌륭한 것이었다.
그곳에서 하루를 더 지낸 것, 그것은 확실히 잘한 일이었다.
조회수 : 3638 , 추천 : 9 , 작성일 : 2004-02-02 , IP : 220.118.92.137 

             

 
comment
여러형태의 수단으로 여행하시는 모습이 정말 지혜롭습니다. 어떤 수단을 이용하냐에 따라 느낌이 확연히 다르니까요. 똘똘한 유랑부부 부럽네요.

비아

200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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