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아침부터 서두르고 꽤나 부산을 떨었는데도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다.
그래도 차를 타고 달리는 것이 상쾌해 기분이 아주 좋다.
날도 화창하고 길가로 보이는 프랑스의 시골 풍경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보기 좋다.
넓은 벌판에 밀밭(아마도…)이 저 멀리까지 펼쳐져 있어 보고만 있어도 시원한 느낌이다.
재미있는 것은 달리는 차의 앞 유리로 새똥이 상당히 자주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겪기 힘든 일인데 첫날부터 이렇게 새똥을 자주 맞는 것을 보면 이곳에 새들이 상당히 많은 모양이다.
새들이 살기 좋도록 자연이 잘 보존되고 있기 때문일까?
오늘의 목적지는 프랑스 서부의 ‘몽생미셸’ (Mont Saint Michel),
지도상의 거리로 따지면 서너 시간이면 충분히 갈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알 수가 없다.
지도를 보는 것도, 길가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는 것도 서툴러 자꾸 길을 헤매기 때문이다.
그나마 오늘은 고속도로를 이용해 갈 예정이니 좀 낫긴 할 것이다.
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직전,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를 찾아 길가의 마을로 들어섰다가 그만 길을 또 잃어 버렸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길을 물어 다시 제 길로 찾아 나왔지만 시간이 자꾸 지연된다.
고속도로로 들어서 다시 차가 시원하게 달리기 시작한다.
땅덩어리가 큰 나라이어서인지 곧게 뻗은 길이 길게 이어지고 옆 차선을 달리는 차들의 속력은 장난이 아니다.
시속 140 km에서 150 km는 예사로 달리지만 아직 현지의 분위기 파악이 안된 우리는 무인 카메라를 경계하며 규정 속도로만 달린다.
한참을 그렇게 달려도 카메라는 보이질 않고, 이내 분위기 파악을 끝낸 우리도 다른 차들과 같이 속도를 내본다.
차가 아주 잘 나간다. 프랑스 차를 만만하게 보았던 우리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차의 성능이 좋다.
아직 제대로 타본 것이 아니니 국산차보다 더 낫다고 단정짓기엔 좀 이른듯하다.
좀 더 타본 후, 결론을 내려야 하겠다.
파리에서 서부의 렌느(Rennes)로 향하는 ‘A11’ 고속도로를 타고 한 시간쯤 달린 후 다시 국도로 빠져 나왔다.
고속도로를 계속 이용해 몽생미셸로 갈수도 있지만 고속도로 통행료를 아끼기 위해 국도를 이용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지도상으로 보니 그렇게 하는 편이 거리상으로 더 가까워 보였다.
국도로 접어들면서부터 흐려지기 시작한 날씨는 이제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비오는 시골길을 따라 달리는 것이 제법 운치가 있어 좋았다.
시간은 벌써 1시가 다 되어가고, 시장기를 느낀 우리는 간단히 점심을 해결 하기로 하고 한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로 들어서며 이정표를 통해 확인한 마을의 이름은 ‘푸제르’(Fougeres),
프랑스어를 우리 맘대로 읽은 것일 뿐 정확한 발음을 우린 모른다.
식당을 찾기 위해 이리 저리 헤매다 본 마을, 그런데 별로 의식하지 않고 보던 마을의 모습이 상당히 아름다웠다.
그제서야 서둘러 가이드북을 뒤져 봤지만 마을의 지명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마을의 모습이 너무 예쁘다.
식당을 찾는 것은 잠시 뒤로 하고 관광안내소부터 찾아 보았다.
동양인 관광객이 낯선 듯, 꽤나 재미있게(?) 우리를 쳐다보던 아이들이 친절하게 관광 안내소까지 우릴 안내해 주었다.
그곳에서 간단한 안내 책자와 직원의 설명으로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마을을 포함한 이 일대를 가리키는 명칭은 ‘브리타뉴’(Bretagne),
영어로는 ‘Brittany’라 일컬어지는 지역으로 프랑스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지방이다.
몽생미셸을 포함한 ‘노르망디’ (Normandy) 지역의 남서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그 중, 이곳 푸제르는 노르망디와 브리타뉴의 경계쯤에 위치한 곳이다.
작지만 아름답게 꾸며진 거리, 그리고 군데군데 예쁜 꽃들로 장식된 마을의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관광 안내소 주변으로 이어지는 오래된 도로들은 아스팔트가 아닌 석재로 포장되어 있었고
길가의 건물들도 아주 오래된 것들이 분명해 보였다.
마을의 한쪽 끝에는 ‘성 레오나르드’ 교회가 자리하고 있는데
12세기부터 17세기 이르도록 계속 수정되어 수세기의 건축 양식을 모두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의 눈엔 구별이 가질 않는다.
그보다는 고풍스럽긴 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교회의 모습이 보기 좋다.
지나온 도시들의 교회나 성당은 너무 화려해 오히려 부담스러웠는데 조용하고 소박한 시골 교회에 이르니 마음이 더욱 경건해진다.
교회 뒷편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정원으로 돌아나가자 저 멀리 성의 모습이 보인다.
엽서에서나 보는 아름다운 성이 아닌 짙은 회색 빛의 중세의 성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이어지는 구시가지의 모습은 영락없는 중세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독특한 모습에 아메바가 성에 가보자며 손을 계속 잡아 끈다.
차를 타고 다시 성을 향해 출발, 성까지 이르는 길은 모두 좁고 오래된 도로였다.
그 길을 통해 주변의 옛 건물들 사이를 돌아 잠시 후 성에 도착했다.
성의 주변에는 적을 방어하기위한 해자(성 주변을 둘러싼 물길)가 설치되어 있었다.
수 백년동안 이 마을을 지켜온 튼튼한 요새의 모습을 한 ‘푸제르’성이 그곳에 서 있었다.
푸제르는 서부의 브리타뉴 지방, 그리고 그 위의 노르망디 지역과 프랑스를 있는 루트의 교차점에 위치한 도시이다.
따라서 끊임없는 군사적 공격을 견뎌내야만 했던 곳이었기에 성은 완벽한 요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초기의 성은 목재를 이용하여 건축 되었으나 12세기 영국의 헨리2세의 공격에 의해 성은 불타버리고
그 이후, 돌로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모두 3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진 성은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채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의 주관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한가지 특이한 점은 교회와 중세의 건물들,
그리고 성의 모습에서 왠지 영국적인 모습들이 느껴진다는 것 이었다.
지역적으로도 영국과 가깝고 명칭도 브리타뉴 (Brittany)인 이곳,
근거 없는 우리의 추측이 아예 틀린 것일까?
예정에 없이 잠시 들른 마을이었지만 독특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정신이 팔려 어느덧 반나절을 넘게 머물고 있었다.
중세의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던 작은 시골 마을, 그 모습에 우리들은 잔잔한 감동을 받는다.
식당에는 결국 들어가 보지도 못했지만 길가 상점에서 산 샌드위치 한 조각만 들고도 아메바의 얼굴은 싱글벙글,
예상치 안았던 즐거움에 얼굴이 아주 환하다.
하룻밤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충동에 마음이 자꾸 흔들렸지만 갈 길이 멀다고 스스로를 재촉하며 차를 출발시켰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몽생미셸을 향해……
몇 마디 더:
1) 톨게이트에서 정산을 하다 비싼 통행료에 깜짝 놀라 버렸다.
한 시간 정도 달렸으니 약 100 km 를 좀 더 달린 것일 터인데 통행료가 무려 18 유로, 예상보다 훨씬 비싼 통행료였다.
앞으로의 우리의 여정을 감안하면 하루 평균 이,삼백 킬로를 주행할 예정인데
고속도로 통행료가 이렇게 비싸면 우리의 예산으로는 감당치 못 할 것 같다.
길이 곧게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크다.
앞으로는 주로 국도를 이용해야만 할 것 같다.
2) 한국에서 자동차 여행에 대해 알아 보았을 때 여러 경험자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는
유럽의 캠핑장 시설이 아주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사실 기대를 많이 하였다.
파란 잔디 위에 잘 꾸며진 캠핑장, 생각만 해도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지낸 우리의 소감은 한 마디로 실망 그 자체였다.
기대했던 파란 잔디 밭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고 텐트를 칠 장소도 바닥에 경사가 있어 자리를 깔고 누워도 영 편칠 않다.
그 중 우리를 가장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중간 중간에 설치된 간이 화장실,
한달 전 남미에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시트와 뚜껑이 없는 좌변기를 이곳에서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황당한(?) 좌변기를 다시 만난 아메바는 잠시 할 말을 잊어 버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캠핑장에도 등급이 있었다.
갖추어진 시설의 정도에 따라 별 하나에서 별 다섯 개까지,
어제 우리가 지낸 곳은 별 하나의 최하 등급이었다.
불편했던 어젯밤이 억울하긴 하지만 그래도 캠핑장이 다 그렇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앞으로는 별의 개수가 많은 고급(?) 캠핑장을 이용해야겠다.
3) 어젯밤에 확인한 어이없는 나의 실수,
이틀 전에 산 가스 버너와 가스통의 연결 부위가 서로 맞지 않는 것이었다.
가스통의 용량에 따라 버너의 종류가 두개로 나누어져 있는 것을 제대로 확인도 안하고 구입을 한 것이다.
배고픔에 절규하는 아메바를 달래며 옆 집(?)의 대형 버너를 빌려
밤 10시가 거의 다 되서 겨우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용서 받기 힘든 실수였지만 아메바의 넓은 아량(?) 덕분에 캠핑장에서의 첫날밤은 무사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