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받고 이틀째, 숙소 앞의 도로에는 우리차가 불법 주차 되어있다.
먼 이국까지 와서 불법 주차를 하는 것이 내키진 않지만 숙소에 달린 주차장이 없어 별수 없다.
주변의 다른 프랑스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룻밤 불법 주차를……
늘 그렇듯이 현지화(?)가 무척 빠른 우리다.
아침부터 파란색 푸조 자동차를 타고 파리 시내로 나섰다.
어제는 오후 내내 프랑스의 유명 할인점 ‘까르푸’에서 텐트와 코펠, 가스 버너 등, 앞으로의 자동차 여행에 필요한 장비들을 장만하였다.
그리고 오늘은 앞으로 먹을 것들을 사야 한다.
먼저 우리 교민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위치한 한인 슈퍼마켓에 들러 장을 보았다.
쌀도 사고, 된장과 고추장도 사고, 거기다 한국산 라면과 캔으로 포장된 김치까지 사고나니 벌써부터 마음이 든든해진다.
자동차의 트렁크가 짐으로 가득차고 나서야 자동차 여행 준비가 모두 끝났다.
수퍼를 나오며 한국에서 온 수입(?) 아이스크림까지 하나씩 입에 물자 기분이 아주 흐믓해진다.
이제 몇 시간 뒤면 파리를 떠난다. 본격적인 자동차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지난 며칠, 친절한 민박집 주인과 맛있는 한국 음식 덕에 파리에서의 체류가 아주 편안했다.
4일씩 머물면서 루브르 박물관도 가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파리는 즐거웠다.
여행은 다소 부실(?)했지만 있는 동안 편안했으니 그 또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차를 몰고 마지막으로 파리 시내를 한번 더 둘러 보았다.
프랑스 대혁명의 유적지인 바스티유 감옥, 역사 시간에 배웠던 대혁명의 기억 때문에 한번은 둘러보고 싶었던 곳,
하지만 지금은 흔적도 남아 있질 않고 그 자리 위에는 오페라 극장이 세워져
여행 책자의 설명 이외에는 과거를 느낄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차를 타고 다시 돌아본 파리, 걸어 다니며 돌아 보았던 것을 차를 타고 다시 보니 느낌이 또 다른 것 같다.
옆의 아메바는 운전 중 한눈 팔지 말라고 연신 구박을 한다.
런던에서 보았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모델이 되었던 오페라 극장을 지날 때는 잠시 차를 세우고 극장을 둘러 보았다.
시간이 부족해 잠깐 둘러본 극장은 ‘오페라의 유령’에 어울리는 멋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낮 12시, 한인 민박집에 잠시 들러 친절했던 주인과 작별을 하고 베르사이유 궁전을 향해 출발했다.
숙소에서 만난 한국 학생을 한명 더 태워 일행이 세 명이 되어 파리 시내를 빠져 나간다.
이제 겨우 이틀째라 파리의 도로와 차들이 아직 어색하지만 슬슬 적응이 되어간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는데도 파리 시내를 헤매고 길을 찾느라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시간이 걸려 파리 근교의 베르사이유 궁전에 도착하였다.
궁전의 첫 모습이 아주 호화스러워 보인다.
궁전 앞의 길가에 마련된 유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궁전으로 들어간다.
물가 비싼 유럽에서 매번 주차 요금을 제대로 지불하다가는 도저히 여행 경비가 감당 안될 터이지만
아직 분위기 파악(?)이 안되었으니 당분간 착하게 살아야 할 것 같다.
무리하게 불법 주차를 시도하다가 견인이라도 되는 경우엔 배보다 배꼽이 더 커 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베르사이유 궁전, 루이 13세의 사냥용 별장으로 사용되던 곳을 그의 아들 루이 14세가 확장하고 재건축하여 만든 궁전이다.
태양왕이라 불렸던 루이 14세는 궁을 완성한 뒤 법원과 행정부를 이곳에 설치하여
17세기 이곳은 프랑스의 정치적인 수도가 되기도 하였다.
이곳은 크게 4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왕과 왕비의 방이 있던 베르사이유 궁전(Chateau of Versailles),
그 앞의 커다란 ‘베르사이유 정원’(Garden of Versailles),
정원의 오른쪽에 자리한 ‘그랑 트리아농’ (Grand Trianon)과 ‘쁘띳 트리아농’ (Petit Trianon)이 그것이다.
‘그랑 트리아농’은 후에 나폴레옹 1세의 거주 구역으로 사용되었으며
‘쁘띳 트리아농’은 대혁명 당시 처형 되었던 비운의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가 즐겨 찾던 곳이라 한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베르사이유 정원, 정원의 규모가 예상을 넘어선다.
궁전의 바로 앞에서부터 정원이 펼쳐 지는데 멀리 보이는 커다란 수로의 끝까지만 해도 약 4km에 달한다고 하며 정원은 그 뒤로도 더 이어진다.
정원의 나무들은 프랑스식 정원의 특징을 보여 주듯 잘 다듬어져 인공의 미를 느끼게 해준다.
자연스러운 멋을 강조하는 영국식 정원과 달리 프랑스식 정원은 인공의 미를 특징으로 한다고 하는데(아메바의 말에 의하면….)
과연 정원의 꽃과 나무들은 자로 재서 잘라낸 듯 모양이 깔끔하다.
특히 궁전 바로 옆의 꽃과 나무들은 프랑스식 정원의 특징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것 같다.
6월말의 뜨거운 햇빛 아래서 정원을 돌아보는 것이 만만치 않다. 금새 땀이 흐르고 목이 마르다.
넓은 정원엔 더위를 피할 그늘 한 구석 보이질 않고, 한참을 돌아 정원의 중반부에 이르러서야 겨우 나무 그늘이 보인다.
잠시 그늘이 드리워진 잔디밭에서 누워 휴식을 취한다.
이곳 베르사이유 궁전에 화장실이 없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 왕을 위한 화장실을 제외하곤 궁전 내의 화장실은 전무 했다고 한다.
수많은 귀족과 왕족들이 정원의 구석 구석에서 볼일을 보느라 애썼을 생각을 하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마도 뭔가 그들만의 비법(?)이 있지 않았을까?
정원을 돌아 나와 궁전의 내부로 들어섰다.
같이 동행했던 한국 학생은 시간이 없어 궁의 내부는 보지 못하겠다고 먼저 작별을 고하고, 다시 우리 둘만 남았다.
유명 관광지인지라 우리 말고도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제법 눈에 띠고 우리는 그 틈에 섞여 천천히 궁을 돌아본다.
20여 개의 방과 별실들로 이루어진 궁전에는 방마다 수많은 그림이 걸려 있다.
역사 속에 등장했던 태양왕 루이 14세도, 프랑스 대혁명 후 처형되었던 루이 16세와 그의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도 그림 속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수많은 그림들로 장식된 방들과 화려한 가구들로 가득찬 궁전을 돌아보며 한때 유럽을 호령했던 프랑스의 모습을 떠 올릴 수 있었다.
화려하게 꾸며진 왕의 방과 왕비의 방, 그 외에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거울의 방’ (The Hall of Mirror) 이었다.
왕궁의 서쪽 편을 따라 길게 자리잡은 이곳에는 천정에는 멋진 그림들이
그리고 그 밑으로는 휘황찬란한 샹들리에로 장식되어 있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와 프러시아의 전쟁 후, 승리한 프러시아가 이곳에서 ‘게르만 제국’의 성립을 선언하였고
50여년 뒤, 1919년에는 바로 그 방에서 패전한 독일을 상대로 한 베르사이유 조약이 조인되어 세계 1차 대전이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역사책이나 영화 속에서나 보던 바로 그곳이었다.
방의 화려한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그 안에 담겨진 역사의 한 장면을 떠올리다 보면 왠지 모를 뭉클함이 느껴진다.
이런 것도 여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닐런지……
시원한 궁전을 빠져 나오자 바로 무더운 여름날을 실감한다.
오후 6시가 다되었는데도 여전히 햇볕이 뜨겁다. 주차장의 차를 빼서 오늘의 우리집 (?)을 찾아 나선다.
파리에서 산 유럽 캠핑 정보 책자에서 골라둔 캠핑장을 찾아가야 한다.
처음으로 하는 캠핑, 숙소와 식사 비용이 많이 절감이 될 것 같아 선택한 것인데 과연 어떨지 궁금하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지도를 보며 캠핑장을 찾아간다.
벌써 옆의 아메바는 배고프다고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첫번째 캠핑장이 마음에 들어야 할텐데…….
한 마디 더: 파리에서 묵었던 한인 민박집, 가을 결혼 예정이던 젊은 주인 내외가 아주 친절하고,
무료로 제공되던 음식 맛도 아주 좋아 아메바의 마음에 꼭 들었던 곳이다.
도미토리이긴 했지만 숙소의 환경도 꽤나 쾌적해 파리의 체류 기간을 아주 즐겁게 만들어 준 곳, 그곳의 이름은 ‘초코파이’였다.
그곳을 떠나던 마지막 날, 주인 내외는 자기집만의 전통이라며 떠나는 우리에게 초코파이 하나씩을 선물 하였다.
작은 선물에 기분이 좋아져 기념 사진도 한 장 더 찍고……
그 동안의 친절함도 고마웠던 터에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건네주는 작은 초코파이는 모두의 기분을 좋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주인 내외의 작은 친절함이 담겨 있어서 일까?
어찌 됐든, 주인 내외의 친절함과 작별을 위한 ‘초코파이 전달식’ 덕분에 파리의 민박집은 우리 여행중에 잊지 못할 추억 중의 하나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