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새 자동차를 받는 날, 한국에서 미리 신청을 해놓은 푸조(Peugeot)의 차를 리스 회사를 통해 오늘 받게 된다.
그 때문에 둘 다 살짝 들뜬 기분이다.
우리의 여행 계획을 보면 그리스와 터키를 제외한 유럽 여행 기간은 2달,
그 중 보름 정도는 유레일 패스를 이용한 기차 여행이고 나머지 한달 반 가량은 자동차 여행이다.
기차를 타고 하는 유럽 여행은 어제로서 일단락 지어지고 오늘부터는 자동차를 이용하여 대륙을 여행하게 된다.
도시를 여행하는 동안 하루종일 걷는 것도, 커다란 배낭을 지고 기차역을 돌아다니는 것도 당분간은 하지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의외로 기쁘다.
스스로 좋아서 나선 길이라 배낭을 둘러메고 이동을 하거나 온종일 걷는 것이 힘들다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막상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아주 기분이 좋다.
머리로는 힘들지 않다고 했지만 몸으로는 역시 힘들었던 모양이다.
어찌 됐든, 여행이 좀 더 편해지는 것도 좋고 내 이름으로 된 새차를 가진다는(?) 사실도 제법 즐거운 일이다.
프랑스의 시골길을 차로 달리며 시원한 바람을 느낄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흐믓해진다.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고 푸조사의 차량 사무소가 있는 ‘라데팡스’ (La Defence)로 향한다.
파리 외곽의 신도시인 라데팡스, 파리 시내와는 달리 17,8세기의 건물들은 전혀 보이지 않고 모두 현대식 건물들뿐이다.
지하철역 광장 앞에 세워진 커다란 ‘신개선문’(Grand Arche)이 아니라면 이곳이 파리(Paris)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을 것 같다.
신개선문을 뒤로 하고 맞은편을 쳐다보니 저 멀리 나폴레옹이 세웠던 개선문이 보이고,
두개의 개선문의 사이를 곧게 뻗은 도로가 꽤나 멋지게 보인다.
주소와 간단한 약도만을 가지고 어렵게 푸조 사무실을 찾아내었다.
순서를 기다려 자동차 인수 서류와 보험 서류에 사인을 하고서 드디어 자동차를 보러 나섰다.
사무실 앞의 주차장에 세워진 여러 대 새 차들, 그 중에 빨간 번호판(리스용)을 가진, 1500cc 급의 파란색 차였다.
전형적인 푸조의 색깔인 푸른색이 푸조 마크와 잘 어울리긴 했지만 차의 외관이 기대에는 못 미친다.
개인적인 판단이긴 하지만 외관상으로는 국산차가 오히려 더 나은 듯 보인다.
물론, 가장 중요한 자동차의 성능은 타 본 뒤에나 알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국산차보다 나은 것이 없어 보인다.
기본적인 사항을 푸조 직원으로부터 설명 듣고 드디어 차 키를 넘겨받아 시동을 걸었다.
새차의 시동 걸리는 소리가 아주 부드럽다.
옆에 앉은 아메바는 넘겨 받은 자동차 매뉴얼을 이리 저리 뒤적이다 한숨을 푹 내쉰다.
다 들여달 볼일이 걱정인 듯……
한국에 있는 우리차를 샀을 때에도 매뉴얼을 보는 것이 아주 큰(?)일이었다.
기본적인 기능만을 확인하곤 세부적인 사항은 매뉴얼을 보지 않아 잘 몰랐다.
가끔 매뉴얼이 필요하긴 했지만 귀찮아 서로 미루다가 끝내 그냥 불편한 채로 사용하였다.
여러 기능을 무시하고 자동차를 스스로 단순화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새로운 매뉴얼을 받은 지금, 그것도 불어와 영어로 된 매뉴얼을 받은 것이다.
아마도 새로 받은 푸조 차의 첨단 기능을 가장 단순화하여 사용하게 될 것 같다.
어느새 시간은 정오가 다되어 가고, 드디어 차를 몰고 한낮의 파리 시내를 향해 나섰다.
몇 달 만에 잡아보는 운전대, 게다가 처음으로 이국에서 운전을 하는 것이라 다소 어리벙벙한 느낌이다.
길거리의 이정표도 전부 불어로 되어 있어 눈에 잘 들어오질 않는다.
익숙해 지는데 시간이 좀 걸릴 듯 하다.
옆 좌석의 아메바는 어제 산 ‘미쉐린 지도’를(미쉐린에서 만든 지도: 자세한 도로 정보와 캠핑장 및 유명 관광지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어
자동차 여행객들이 보기에 편함.)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하지만 엄청난 길치(노래를 못하면 음치, 길을 잘 못 찾으면 길치)인 아메바는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찾아내질 못한다.
할 수 없이 출발 전 잠깐 보았던 지도의 기억과 이정표에 의지해 길을 찾아간다.
머리가 띵하다. 길치인 아메바와 함께 할 한달 반의 자동차 여행이 갑자기 두려워(?)진다.
지도도 못 본다며 구박을 하는데도 싱글거리며 쳐다보는 아메바,
힘든 여행 일정 중에도 늘 밝은 모습이고 성질 급한 나의 구박에도 웃는 얼굴로 대적(?)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다.
하지만 웃는 얼굴 뒤에 숨어있는(?) 엄청난 길치 아메바의 모습에 앞으로의 험난한 자동차 여행이 떠 오른다.
어찌하랴, 다 내 팔자인걸……
오늘의 나머지 할 일은 자동차 여행을 준비하는 것,
한달 반 동안 사용해야 할 텐트와 코펠 등, 각종 캠핑 장비들을 구입하여야 한다.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는 만큼 숙소는 비용이 저렴한 캠핑장을 이용하게 되고 식사도 가능한 곳에서는 직접 해서 먹게 될 것이다.
물가 비싼 유럽에서 여행 경비를 절약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고
잘 가꾸어진 유럽의 캠핑장을 다니며 숙식을 해결하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처음 달리는 파리 시내의 길, 옆에는 항상 즐거운 길치를 태우고 프랑스의 유명 할인매장 ‘카르푸’로 향한다.
머리가 띵하긴 해도 늘 밝은 얼굴을 한 아메바가 자랑스럽다.
한 마디 더:
유럽 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가 사용했던 차량은 프랑스 ‘푸조’사의 자동차를 리스(Lease)한 것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 이름으로 새 자동차를 구입하여 리스하는 기간동안 사용하고 중고차로 되파는 것이었다.
유럽 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리스 프로그램으로 홍보 성격이 강하고,
각종 면세 혜택을 이용해 가격이 아주 저렴하다.
특히, 기간이 긴 경우에는 렌트에 비해서 아주 싸진다.
그리고 사용자 이름의 새차를 구입하는 것이므로 보험 가입에 제한이 없어
사고가 났을 경우나 도난을 당했을 경우에도 추가 비용을 부담할 필요 없이 전액 보험 처리가 가능하도록 보험을 들 수 있다.
사실, 우리가 리스 프로그램을 이용한 가장 큰 이유는 사고나 도난시에 보험 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차종은 307 XT, 1500 cc 급의 오토매틱 차량이다.
둘 다 매뉴얼 기어 차량에 익숙치 않아 비용이 더 비싼 것을 감수하고 오토매틱을 선택하였다.
날마다 기름값이 필요하므로 기차를 이용하는 경우에 비해 가격이 많이 싼 것은 아니었지만
캠핑장을 이용하며 식사를 직접 해결 할 수 있으므로 전체적인 여행 경비를 절약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유럽 곳곳을, 특히 시골 마을까지 자동차를 이용해 돌아보는 것은 자동차가 아니었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보험 상의 한가지 취약점은 상대적으로 위험한 동유럽 지역에서의 사고나 도난은 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험이 더 필요한 곳에서 보험 처리가 안 되는 것, 아직 낯설게만 느껴지는 동유럽에도 꼭 가보고 싶었던 우리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차를 받기 전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자료는 한국에서 받은 것으로 발행된 지 1년이 더 지난 것이었다.
그래서 푸조 사무실에 도착하자 마자 직원에게 다시 문의를 하였다.
시간이 좀 더 지났으니 변경된 사항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고 한 일이었다.
직원의 대답은 자료와 동일, 동유럽은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새 기준을 확인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확인 결과,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가 보험 처리되는 지역으로 변경이 되어있었다.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 직원도 자세히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끝까지 확인한 덕에 우리의 동유럽행도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이 가능해졌다.
